삼류 과학자의 다짐

어릴적 나의 꿈은 훌륭한 과학자였다. 훌륭하다는 건 첫째가 되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거나 주도하는 과학자라는 표현일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는 ‘내가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는 걸 깨우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었고 (그때는 뭐가 그리 내가 대단해보였는지 비과학적인 사고로 바라본 과학의 세상이 잘못되어 보였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조금은 겸손하게 ‘두 개의 논문만 끝내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지만 그 이면에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욕심이 꿈틀대고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는 노골적으로 ‘난 일년에 논문을 몇 편씩 써서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 놓여진 작은 문제에 침잠(沈潛)하는 것이, 아인슈타인과 파인만 같은 훌륭한 과학자를 꿈꿨던 어릴적 꿈과 비교해 보잘것 없어진 현실이 부끄럽다 느낀다. 학회에서도 거대한 질문, 우리 분야의 중요 난제들 – 코로나 히팅과 같은 – 을 맞닥뜨리지 않는 것이 마음 한켠을 누르는 돌덩이 같다. 프리먼 다이슨이 글 중에 “노년의 아인슈타인이나 노년의 힐베르트 같은 환원주의적 사고로 학문을 접근하던 이들은 큰 수학적 성취를 이용한 현상에 대한 연구는 – 비록 그 연구가 현시대에는 매우 중요한 이슈인 블랙홀이라고 할지라도 – 삼류 과학자의 일"이라 여긴다고 언급한다. 근데 어찌보면 그 천재적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서울대에서 학문을 접해온 나에게도 내면화되어 있다. 프리먼 다이슨도 시대의 과학자로 살다간 사람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파인만, 오펜하이머를 보며 마음 힘들어하는 젊은 시절들도 있었으니 이러한 철학적 고찰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태양 코로나 먼지의 편광’에 대한 연구와 ‘채층의 제트와 충격파’에 대한 연구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논하기 어려울지 모르는 매우 지엽적인 연구다. 하지만 언젠가 가졌던 생각처럼 과학을 하는 마음은 꽃을 보며 ‘아름답다’ 느끼는 마음과 비슷한 듯 하다. 학문적인 추구는 초월적 아름다움을 찾는 예술가로서의 목표와 동일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논문은 잘 쓰지 못해도, 과제 프로포절을 쓰며 이 연구를 “왜” 해야하는지 답변하기 어려워도, 자연의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연구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당신의 연구가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게 될 때 우주의 역사와 생명의 기원, 인류의 존망에 걸린 문제와 연계하려 힘쓰기보다 그저 ‘나약한 인간으로써 자연의 초월적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의 가치’에 대해 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4년 11월 18일 (월) 1차 수정 2024년 11월 21일 (목)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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