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은 나이가 완성할까

“홍OO “尹, 이재명 나라에서 살아봐”…게시글 돌연 삭제”

아침 출근 후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포털을 열고 이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마주쳤다. 안그래도 최근의 뉴스기사글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더라’, ‘경선에서 떨어진 후 화가나서 해외로 출국했다더라’, ‘전 대구시장이 서울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더라’ 등 전 경선 후보를 인간의 근본적인 ‘욕심’이 드러나는 한 인간으로 폄하하고 놀리는데 집중하는 뉴스기사들이 쏟아져나왔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하수상한 때는 더 많은 유명인, 정치인이 글을 썼다가 지우며 뉴스기사에 오르내리는 것 같다.

‘아, 일흔이 넘었음에도 혈기에 글을 쓰면 후회하는 글이 되는구나. 나이가 인간을 완성하지 않는구나’

내 머릿속에서 맴돈 생각과 함께 두세달 쯤 전에 쓴 페북의 글이 떠올랐다. ‘더이상 공개된 장소에 글을 쓰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깨고 쓴 글이었기 때문이다. 혈기에 가득차서 그 글을 쓰고, 쓰면서도 ‘나중엔 후회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가졌다. 후회하는 감정이 와도 지우지 않겠다는 마음의 투쟁을 하며 글을 이어나갔다. 내 일부 개신교의 독재와 계엄에 대한 찬양을 비난하는 글은 전체공개를 했음에도 고작 20건 정도의 좋아요를 받았을 뿐이지만 내 감정을 표출할 방법이 그 뿐이었고 지우지 않겠다는 감정은 사회 시스템적인 ‘자기검열’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쓴 후 몇시간 후 부터 페이스북은 접속하지 않음에도 마음 깊숙이서부터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이 글도 내 의가 아닐까…’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쓰기는 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면 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글쓰기처럼 보인다. 일흔까지 살아서도 과거의 글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지운다는 건, 먼 과거의 글까지 생각하며 지운다는 건 그 글을 깊이 ‘묵상’하며 마음 무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니 오히려 낫다고 할 수 있으려나. 난 언제쯤 마음 가볍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난 일흔이 되면 내 글을 부끄럽지 않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내 글은 나이가 완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