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남는 것은
금요일 저녁마다 순모임을 참석해서 성경을 읽고 일주일을 나누는 자리를 갖는다. 순이란 용어가 어색하지만 과거 교회에서 구역예배에 좀 더 예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일주일을 나누고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등을 나누고 서로 기도를 해준다.
개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뭐라해도 자녀 양육이다. 아이를 학원을 보내야하는지, 얼마나 교육 시키는게 올바른지,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가 어떠한지 등 순원들의 대부분의 이슈는 아이 양육이다. 또한 한 나이가 많으신 순원님께서는 자녀의 결혼과 그 후의 자녀, 그리고 그 배우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신다. 지난달 버지니아 한 계회의 순모임에 참석해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얼마나 교육시켜야 하는지, 경쟁에서 뒤쳐질까봐 부모로서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주일 축구 경기 등이 있으면 예배를 빠지고 가는게 올바른지를 나눴다. 국경을 초월해서 가장 큰 갈등의 장이, 그리고 기도의 주제가 자녀양육이었다. 성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으니 그 주제가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전 학교에서의 기도모임에서 사람들이 성적이나 연구 때문에 기도제목을 내어놓거나 혹은 어려움을 토로할 때, 신앙이 흔들거릴 때 난 너무나도 쉽게 ‘그 시험을 통해 성장시키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 말을 입밖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정말 고통 속에 있기 전까지는 이 말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 신앙강요인지 몰랐다. 고통 속에 있을 때의 부르짖음은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무거운 소리다. 욥이 부르짖을 때 그 친구들의 조언이 논리적으로는 납득되지만 결국 하나님이 올바르지 않다 하시는 건 그 조언이 욥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지도, 위로가 되지도 못하기 때문 아닐까.
요즈음 난 마음 속에 큰 돌덩이를 이고 사는 느낌이다. 부모님과의 관계 정의에 있어 갈등과 어려움이 있어서다. 아무리 이 기도제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고 한들, 이미 그 통로를 지나오신 분들이라 할지라도 정말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삶을 마주서야하느것은 내 자신이고 나의 짐은 조금도 경감되지 않는걸. 심지어 아내마저도 이 마음의 짐을 나눌 수 없어 보인다.
다만 남는 것은 함께 눈물흘려주는 것이다. 순모임에서 순원들이 어려움을 토로할 때 함께 공감하고 기도하며 위로해주는 것이 우리가 타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욥의 친구들이 욥 옆에 와서 어깨를 붙잡고 함께 울며 기도했다면 하나님은 선하다고 판단하지 않으셨을까. 바울이 갇혈을 때 오네시모를 칭찬하고 마가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그들이 옆에와서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의 힘든 여정을 가는 바울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난 순모임에서 최대한 말을 안하기로 다짐했다.내가 말함이 타인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것이 아닌 나의 생각과 주장들로 채워질 수 있기에 차라리 잠잠하고 공감하기로 다짐했다. 혹여 아주 작은 말을 할 때에, 나의 과거 경험조차도 내 주관이 반영될 수 있기에 ‘저만 그랬을 수 있지만,’이라던가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혹은 ‘~인 것 같아요’와 같이 부드러운 용어로 말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