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쓰는 편지

나단아, 나엘아,

아빠는 2024년 11월 9일 갑자기 남극내륙으로 들어왔어. 어제도 제대로 전화를 못하고 갑자기 들어와서 아쉽고, 보고싶어. 그래도 오기전에 사진 몇장을 받아왔으니, 나다나엘 사진을 보며 웃음지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야.

극지연구소는 장보고기지에서 1200km떨어진 지역에 천문우주거점 (내륙기지)을 만들려고 해. 아빠도 거기에 태양망원경을 갖다놓고 싶어서 이 일에 참여했어.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는데 명목상의 이유로 이번 방문에서는 여기 해발 1100m의 베이스캠프에서 태양을 관측해야해. 한번에 내륙거점에 가기엔 남극대륙에서 1200km는 너무나도 먼 거리거든. 이번에 남극내륙기지에 와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간다면 아마, 남극 내륙에 우리나라 태양망원경을 설치할 꿈을 이룰 수 있을거야.

하지만 아빠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걱정하고, ‘해야할까?‘를 고민하는 부분은 나다나엘과 보낼 시간들이야. 이 사업이 가면 몇년에 한번씩은 3-4개월씩 들어와서 일해야할 수 있거든. 나다나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마음의 걱정이라 아빠의 꿈만을 바라보며 가는 게, 올바를까 고민하게 되더라. 나단이와 함께 할 야구, 축구와, 나엘이와 갈 책방이 더 의미있고 소중한 일들이 아닐까 생각되더라고.

아빠는 아직 결론을 못 내리겠어. 아마 나중에 정말로 선택해야할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 올바라보이는 선택을 할게. 나다나엘을 사랑하니까, 너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 아빠는 너희와의 모든 시간이 기대된다. 보고싶고 사랑해.

24년 11월 10일 밤 10시 26분, 남극내륙베이스 캠프 2일차 바람불고 해가 떠 있는 밤에.

내 인생의 황금기

얼마전 논문을 빨리 쓰라는 마리아 박사님의 닥달에 “요즘 난 내 인생의 황금기 (golden time)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내가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단과 나엘을 생각할 때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오늘은 일을 마치고 조금 늦게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 도착했다. 나단이가 두팔벌려 달려와 안기고 그 뒤로 나엘이가 와서 안겼을 때 행복함을 느꼈다. 인생의 피곤함이 전혀 없는 평온한 상태. 이 순간이 계속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 - 신영복

사랑은 경작되는 것

사랑은 경작되는 것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 어쩌면 이리 아름다운 글 을 쓸 수 있을까. 우리의 #사랑 은 주어진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니. 아내와의 만남과 아이의 만남이 다 나의 뜻이 아니고 나의 감정이 아닌 주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나에 대한 위로의 말이다. 고맙습니다.

덧, #신영복 선생님을 이름만 들었고 읽어도 그저 스쳐지나갔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는구나. 40에는 #쇼펜하우어 가 아니라 신영복을 읽어야 하나보다.

세월호를 생각하며- 기억은 힘이세지

9주년 기념 표어는 “기억은 힘이 세지”. 사람들은 극복을 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다. 그 힘빠졌던 하루의 기억과 정말 눈물나게 원망되던 국가와, 지난 수년의 싸움과. 처음에는 분노만이 나왔고 노란리본 정도를 차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저 분노했고, 그걸 감추기 위해 오히려 무심했다. 처음에는 위로의 말이었다면 그 이후엔 치유의 말들, 그리고 이제는 극복과 희망을 본다.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는 그대로 악하고, 위험하고, 이익만이 강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태원참사가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조롱하고 멸시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 상처는 우리를 점점 더 강하게 해서 사회에 ‘노!‘라고 외칠 힘을 준다. 4월 16일이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글을 쓸 힘이 났다. 며칠 전부터는 노란리본 정도를 찾아다녔고 온라인 캠페인에 참여할 정도였지만 세월호의 기억이 고래를 타고 내게 와서 이제 다시 생동감있게 춤춰온다. 사회에 끊임없는 조롱과 수군거림, 비웃음은 더이상 우리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 우린 그 너머서를 보는 보편적인 한국인이니까. 우리는 세월호를 함께한 친구들이니까.

예수님이라면 어떠셨을까?

오늘 문득 “예수님이라면 어떠셨을까"를 고민하게(종교적 용어로는 묵상) 됩니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훈련 받아왔었는데 커리어에 매달린 후로, 내 욕심에 조금 마음을 열어둔 후로 이 질문을 잘 던지지 않았었어요. 이번 질문은 요즘 출석 중인 대형 교회의 차별금지법 관련 문자를 받은 후 던지는 질문이었어요. 

예수님이셨다면 이 교회에 계시지 않았겠다 싶더라구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예수님은 교회에서 높임받는 걸 절대 좋아하시지 않으실 분이고, 수준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환담만 나누는 곳에 끼이지 않으실 분입니다. 지금 출석 중인 교회는 기독교계에서 그나마 ‘선교’, ‘봉사’ 등 행동을 중시하는 교회입니다만, 그조차도 문드러져 비싼 디저트 먹으며 노닥거리는 곳을, 예수님은 절대 좋아하시지 않을 겁니다. 작은 교회, 정말 소수의 인원이 모여서 김치와 밥을 주변 약자에게 나누는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본인 생계도 잘 해결 안되면서 헌금을 쪼개서 여기저기 돕는 교회, 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는 목사님 사모님이 걱정되어 음식이라도 갖다드리는 수많은 작은 교회에 계실거예요.

제가 아는 예수님은 아마, 용산 뒷골목 쪽방촌 할머니 집에 도배를 하고 계실거고, 서울역 노숙인 옆에서 함께 앉아계실 겁니다. 결손가정 아이들을 챙기고 있을거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눈물 짓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진짜 크리스챤’들은 그 삶을 따라 그런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되돌아가 제 삶을 돌아봅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다가 어느순간 현실에 안주해서 인센티브 늘릴 법을 궁리하고 집값이 오르길 기대하는 제 모습이 오늘따라 더 창피하고 초라합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무게에 짓눌려 훌쩍 다시 그 길을 가기엔 쉽지 않은 결정인 것 같습니다. 통장 잔고의 일부를 헌금하고 후원해도 조금의 마음의 안정을 가질지언정 헌금함에 동전을 쏟아넣던 바리새인이 내 모습인 것 같아 괴롭습니다. 두 렙돈을 다 던져넣은 여인은 얼마나 마음이 가볍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을까요. 

내일은 달라져야합니다. 마음의 욕심을 비워내려 발버둥칠 겁니다. 더 높은 커리어 자리로 가고자하는 욕망을 끊고 내 주변의 작은 곳을 매꾸는 사람이 되려 노력할 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자기 최면으로 내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하지 않을 겁니다. 내 방향타를 천천히 원래의 위치로, 배워왔던 위치로 돌릴 것입니다. 

덧,

예수님이라면 보편적 복지정책을 엄청 좋아하셨을 거예요. 약자와 함께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박사학위를 가진 자의 화이트칼라 노동과, 아르바이트 시급 노동자가 같은 한 달란트를 받는 것이 얼마나 성경적인가요? 울산에서 장로를 하셨던 큰아버지께서 저에게 빨갱이 사상에 물들었다며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두둔한다’며 소리치셨던 순간이 있었는데, 아마 성경의 이 원리와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해내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세상살이

조심스럽게 내 주변을 돌아보면 최근의 내 감정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평소에 이랬다기보단 요즈음 내 감정이 그렇다. 몇년 전 심리적으로 큰 타격이 있었던 후로 한두명이 부정적으로 보였는데 요즈음은 더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처음엔 내 환경이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게 사실일 것 같다 생각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순하디순한, 정직하고 정직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가 세상에 나와보니 서로 물고뜯고 긍정적인 말 뒤에는 칼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한없이 잘하더라도, 뒤에선 어떤 해코지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걸 알았다. 몇번 그러한 일을 겪기도 했다. 나에게 했던 말과 실제 결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내가 크레딧이 있는 무엇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볼 때 ‘줄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그런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 화가 났다.여섯달 쯤 전부터는 적극적으로 화를 낸 것 같다. 어쩌면 연구소에서 싸움닭이라고 불릴만큼 대놓고 따진 일도 있었다. 아무리 따진다고 한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지라, 그리고 그 사람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라 전혀 해결은 되지 않았다. 최근 한달동안은, 곰곰한 생각 후에 주변이 전부 뒤틀어져버리는건 어쩌면, 내 자신이 그런 마음으로 살아서일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 수준도 그저그런, 그 사람들 중 하나이고, 그렇기에 내 주변엔 그런 사람만 가득한 것 같았다.

내 생각에, 학교에서는 달랐다. 다 교양있었고 예의가 발랐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수의 지적인 사람들이 그 행동에 대해 올바로 판단했고 원만히, 논리적으로 해결되었다. 난 그들 중 하나라고 착각하며 십수년을 살아왔는데 세상에 나와보니 난 그저 그런 척 살았던, 그 상황을 이용하고 있던 한명의 일반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주변 몇 사람들이 ‘가르침의 부담’과 ‘펀딩의 부담’이 있음에도 교수가 되었든 학생이 되었든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정신적인 질병을 크든 작든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병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세상 사는게 어렵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출근해서 쓰는 편지

나단아,

오늘 아침에 나단이는 아빠한테 너무도 선명하게 “아빠"라고 이야기했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빠는 마음이 짜릿하더라구. 아빠구나. 내가 아빠구나.라는 (시덥잖아보이지만 정말 찌릿한!) 느낌을 받았어. 사실 지난주말 나단이와 아빠가 내내 같이 지내면서도 나단이는 계속 칭얼대고 힘들어해서 아빠도 많이 지친 상태였어. 엄마도 말할 것도 없고 나엘이도 잘 잠들지 못했었단다. 아마 이가 나오느라 통증이 있는 것 같고 똥을 못 싸서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제 오셨는데도 나단이는 계속 힘들어했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또 빠르게 지치시는 것 같아. 그런 와중에 오늘 아침에는 계속 아빠한테 오려하고 아빠한테 ‘아빠’라고 부르곤 했으니 얼마나 아빠 마음이 따뜻해졌겠니? 나단이를 안고 회사에 오고 싶을 정도였어.

지금 조금 그나마 체력도 되고 나단이를 100% 보지 않아도 될 때 아빠는, 최대한 실적을 만들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논문도 써놓고, 개발도 다 해놓고 말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냥 오실 수도 없고 우리가 이사가기도 요원하니까. 열심히 해서 해 놓아야지. 지난주에는 충남대 형 누나들이 다음 학기에 배울 분광기를 만들었어. 이걸 만들면서 기뻤던 이유는 나중에 나단이도 아빠랑 이 장난감들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거든. 상상하는대로 그리고 조립해서 만드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거든. 나단이가 함께 만든 분광기로 아빠랑 같이 관측하러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처음에는 나단이가 주는 아이디어로 아빠가 만들어줄게. 점점 나단이도 하나하나 해 나갈 수 있으면 (아빠도 고등학교 때 코딩을 배우고 싶었단다?) 같이 함께 만들어나가자 :)

하루가 짧아. 할 일은 많고 말야. 편지는 짧게 짧게 많이 쓰기로 다짐했어. 편지를 쓸 때면 나단이가 옆에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이야. 아직은 아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야. 나중에는 아빠가 이 편지를 주고, 또 옆에서 말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면 참 행복하겠다. 아빠는 그럼 이제 오늘의 일과를 하러 가볼게!

2023년 8월 8일, 아빠의 너저분한 연구실에서

너희가 태어난 날

너희가 태어난지 겨우 이틀이 되었어. 지난 이틀간은 아빠의 인생에서 겪었던 많은 격정의 감정 중 또한 손에 꼽을만한 이틀이었어. 나단이와 나엘이가 태어난 건 새벽 3시 4분, 5분. 아쉽게도 엄마가 수술을 해야했기 때문에 아빠는 너희들이 태어나는 상황을 볼 순 없었어. 수술 장면에 있는 사람보다도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긴장감은 더 큰 건 많은 드라마에서 그 장면을 담는것을 보면 알 수 있지. 기도를 했었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성경을 읽었어.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태어났다고 알려주시고, 의사선생님이 또 나오셔서 알려주셨어. 그리고 곧 유리 창문을 통해서 너희들을 볼 수 있었단다.

잠시 또 시간이 흐르니 이번엔 수술실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어. 엄마는 침대네 누워있었고 아빠는 들어가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했지. 간호사 선생님이 너무 깊게 찌른 나머지 오른쪽 코가 얼얼하고 피맛이 나는채로 몇시간이나 지속됐단다. 그리고 엄마 침대 옆으로 가서 엄마와 인사했어.

너희가 처음 바구니-정말 하얀색 바구니였어. 그 조그마한 바구니에 너희 둘이 들어갈 수 있다니!-에 담겨나왔을 땐 너무 조그마해서 어떻게 다뤄야할지도 모르겠더라구. 게다가 나단이는 나엘이와 비교해 더 말라서 할아버지처럼 보일 정도였다니까! 처음에 아빤 많이 어리둥절했어. ‘나를 안 닮았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내 귀를 보니 아빠의 귀더라! 나단이는 아빠같을 거라고 마냥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날렵해보이고 빨라보여서 조금 이질감을 느꼈달까. 아빠를 닮았으면 좀 더 느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아마 아빠는 아빠의 어릴 적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신기하게도 잠깐 ‘엥’하고 울다가 그치고 다시 꼬물거리고 다시 ‘엥’하고 몇초 울고 그치는 행동을 계속 하더라. 둘이 번갈아서! 그래서 긴장했지.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쌍둥이를 키우려면 잠을 못 잔다더라’라는 말이 실제일 수 있겠다 싶었거든! 번갈아서 울다니! 우리 아기들! 얼굴에는 아직도 하얀색 거풀처럼 태지가 말라붙어있고 머리는 젖어있는 채로 눈도 못뜨고 그렇게 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너무 행복했어.

바깥에서 기다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고모, 그리고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어. 미국에 있어서 한창 낮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빠의 친구는 축하한다는 무미건조한 답변을 보내줬어. 아마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감동이 없는 거겠지? 흥! 이러면서 기다리니 외할머니가 전화하셨어. 자다가 일어나셔서 우리 연락을 받으신거야. 외할머니도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다렸단다.

나다나엘아 너희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축복 속에 태어났어.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기도로 쌓아놓은 집안에 아빠와 엄마의 기도가 더해져서 너희들이 태어났어. 너희 이름을 엄마가 처음 생각하고 그 뜻을 말해주었을 때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몰라.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처럼 성경에서 강조되는 제자들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알아보았던, 그리고 예수님이 알아봐주셨던 나다나엘은 한번도 아빠가 묵상해보지 못했던 인물이었거든. 몇가지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이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때도 엄마는 ‘너희 이름은 태어날 때부터 나다나엘이었다’고 이야기했어. 그 축복이 너희 가운데 있어. 참 감사한 거야.

이름이 부담이 될까봐 걱정했던 분도 있었어. 아빠도 같은 걱정되는 마음은 들었지만, 얘들아 너희는 아마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아이들일거야. 너희도 아빠가 ‘모세’라는 아빠의 이름을 사랑했듯이 나다나엘이라는 너희의 이름을 사랑하게 될거야.

내일은 너희와 살을 맞대는 캥거루케어라는 프로그램을 하러 내려갈 예정이야. 너희와 맨살을 맞댈 수 있다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너희에게 안정을 줄지는 과학을 하는 아빠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에겐 마음에 위안을 줄거라 생각해. 그리고 너희와 함께할 수 있다는게 정말 멋질 것 같아. 앞으로 너희와 함께할 수십년이 참 멋질 것 같아. 내 사랑 두 아이, 나단 나엘!

여보에게 비행기에서 쓰는 편지

여보 이 편지를 쓰는 시점에 저는 비행기에서 한창 날아 태평양 그 어딘가에 있어요. 딩신과 또 많이 떨어져있는 2주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네요. 2주전 출장보다는 하루가 짧지만 함께 있던 시간동안 느꼈던 아이의 태동과 아이들이 꼼지락거려 힘들어했던 여보를 보고 난 후의 이번 출장은 마음이 무거워져요.

오는 내내 비행기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아이를 안고 산을 오르거나, 아이와 비행기에 타는 일, 여보와 내가 한명씩 안고 있는 모습들. 계속 미래의 일들을 그리게 되요. 그러고나면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집니다.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행복해지나봐요.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엄마가 될 거예요. 당신이 아이들을 지도할 모습들이 떠올라요. “왜"라고 물을 때 친절하게 모든 걸 설명하고 있을 여보를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재우고나면 자리에서 성경을 읽고있을 여보를 생각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정말 내가 꿈꾸던 와이프구나라는 마음 가득 생각이 들고, 내가 그렸던 (아니, 내가 보고 배워왔던) 아빠의 모습을 나도 해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보와 흰머리가 늘어갈 때쯤, 피부에 주름이 좀 늘었을 때쯤, 아이들은 둥지를 떠나겠지요? 그때쯤 우리 둘이 다시 남게 되면 서로 위로하면서 다시 둘만의 행복을 또 찾아가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우리 서로에게도 아름다운 그런 남은 여생을 살아나가요.

우리가 키우게 될 두 남매는 아름답게 클 거예요. 당신도 나도, 하나님 앞에서 내면이 천국에 합당하게 클 거예요. 사랑하고 고마워요. 내 아름다움, 내 전부야. 사랑해.